DEEP DIVE

ASF로 야생 멧돼지 ‘멸종 시계’ 빨라졌다

감염 확인·강력 의심 최소 6종, 일부 개체군 수개월 만에 80% 이상 감소

Nature Reviews Biodiversity, 아시아 고유 야생돼지 12종 종합 대응 로드맵 제시

강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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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현 기자 <everything23@hanmail.net>

2026.10.5조회 25,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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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혹멧돼지 암컷과 야생에서 태어난 새끼들. 인도네시아 동자바 Baluran National Park. 사진: © Simon Bruslund/Copenhagen Zoo. WCS Newsroom 제공.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을 더 이상 양돈산업의 질병만으로 볼 수 없다는 경고가 나왔다. 아시아에서 ASF가 농장을 넘어 숲으로 확산하면서, 일부 고유 야생돼지 종의 존속 자체를 위협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Nature Reviews Biodiversity가 2026년 9월 발표한 Roadmap 논문 「Pathways to recover Asian wild pigs from African swine fever」는 아시아 고유 야생돼지 12종의 ASF 노출과 보전위험을 종합하고, 멸종을 막기 위한 8대 행동계획을 제시했다. 연구에는 야생동물 보전과 수의·질병관리 분야 과학자 31명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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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개월 만에 87%↓…‘개체수 감소’가 아니라 ‘붕괴’

말레이시아 Pasoh Forest Reserve에서는 ASF가 확인된 뒤 4개월 만에 카메라트랩으로 측정한 야생멧돼지 활동도가 87% 감소했다. Endau-Rompin 지역에서는 2021~2023년 야생멧돼지가 99%, 순다수염돼지가 81% 감소했다. 논문은 일부 지역에서 회복 신호가 나타났음에도 여러 개체군이 ASF 이전 수준에 크게 못 미치는 상태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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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 ASF 유입·지속, 사냥, 서식지 손실과 파편화, 기후 관련 압력, 작은 개체군의 취약성과 대응역량 부족이 결합해 개체수 감소·지역절멸·종 멸종으로 이어지는 구조. 자료: Rode-White et al., Nature Reviews Biodiversity (2026), Fig.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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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F는 이미 취약했던 종에게 마지막 한 번의 충격이 아니라, 회복 가능성 자체를 닫아버릴 수 있는 ‘가속 장치’가 되고 있다.

같은 ASF인데 왜 아시아에서는 ‘멸종’이 문제인가

이번 논문의 Box 1은 아프리카·유럽·아시아의 역학적 환경과 전파양상이 서로 다르다고 설명한다. 이 차이는 아시아에서 왜 ASF가 ‘장기 유행’보다 ‘종의 소멸’이라는 문제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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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1 비교도. 아프리카에서는 혹멧돼지–연질진드기 순환, 유럽에서는 고밀도 야생멧돼지와 감염 폐사체에 의한 지속 전파가 두드러진다. 아시아의 희귀 고유종에서는 심각한 폐사와 개체군 붕괴가 먼저 나타날 수 있다. 자료: Nature Reviews Biodiversity, Box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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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1의 핵심을 한글로 정리한 in:meat 비교표.

12종 중 최소 6종…이미 바이러스와 접촉했다

야생 개체에서 ASF 감염이 확인된 종은 순다수염돼지, 필리핀혹멧돼지, 술라웨시혹멧돼지, 술라웨시바비루사 등 4종이다. 비사야혹멧돼지는 사육 개체에서 감염이 확인됐으며 야생으로의 확산이 강하게 의심된다. 민도로혹멧돼지는 야생에서 급격한 감소가 보고돼 감염 가능성이 높게 평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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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2. 동남아시아 고유 야생돼지 12종의 분포지역과 2019년 이후 공식 보고된 ASF 발생지점을 중첩한 지도. 필리핀·보르네오·술라웨시 등 고유종 서식지역 곳곳에서 ASF 발생이 확인된다. 자료: Rode-White et al., Nature Reviews Biodiversity (2026), Fig.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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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2와 본문 서술을 토대로 감염 확인·의심 상태를 한국어로 정리했다. in:meat 편집.

술라웨시, ASF가 ‘멸종위기’로 바뀐 최전선

인도네시아 술라웨시는 이번 연구에서 ASF에 의한 멸종위험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지역 가운데 하나다. 술라웨시혹멧돼지에서는 2023년 8월, 술라웨시바비루사에서는 같은 해 10월 감염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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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아시아 고유 혹멧돼지류의 어미와 어린 개체. (우) 바비루사(Babirusa). 수컷의 위쪽 송곳니가 주둥이 피부를 뚫고 위로 자라 뒤로 휘는 독특한 형태로 유명하다.

논문이 취합한 자료에서는 술라웨시혹멧돼지 37마리의 감염이 확인됐고 34마리가 의심 폐사로 분류됐다. 술라웨시바비루사 역시 6마리 확인, 4마리 의심 폐사가 보고됐다. Babyrousa는 Sus속과 진화적으로 상당히 떨어진 독특한 계통이지만 실제 감염과 폐사가 확인됐다.

2025년 재평가에서는 술라웨시·털·토기안 바비루사 3종이 모두 위급(Critically Endangered)으로 상향됐고, 술라웨시혹멧돼지는 준위협(Near Threatened)에서 위기(Endangered)로 올라갔다.

돼지가 사라지면 숲의 먹이사슬도 흔들린다

야생돼지는 숲 바닥을 뒤집는 생태계 공학자이자 종자 확산자이며 호랑이와 표범 같은 대형 포식자의 중요한 먹이다. 연구진은 야생돼지 감소가 포식자의 먹이 기반과 산림 생태계 기능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보르네오에서 순다수염돼지는 일부 원주민과 산림의존 공동체의 단백질 공급원이자 문화적 자원이다. 개체군이 붕괴하면 사냥 대상이 더 작은 야생동물로 이동해 또 다른 생태압력을 만들 수 있다.

동물원도 안전하지 않았다…16마리 모두 폐사

야생 개체군이 무너질 때 마지막 보험은 동물원과 보전번식시설의 ex situ 개체군이다. 그러나 현재의 안전망은 충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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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이 내놓은 8개의 생존 로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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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ure Reviews Biodiversity Fig. 3의 실행구조를 in:meat가 한글로 재구성. 연구진은 Action 3 감시·조기경보, Action 6 보전번식·유전관리, Action 8 긴급재원을 미룰 수 없는 핵심으로 제시했다.

백신이 답일까…야생종 적용은 아직 ‘미지수’

가축돼지용 ASF 백신 개발은 진전하고 있지만 자유롭게 이동하는 희귀 야생돼지에 적용할 수 있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전달체계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현재 단계에서는 감시, 폐사체 신속처리, 야생–가축 접점의 생물보안, 보전번식이 더 즉시 적용 가능한 수단으로 제시된다.

돼지산업은 이미 1,300억~1,920억 달러를 잃었다

연구진은 2018년 이후 아시아 양돈산업이 ASF로 입은 손실을 1,300억~1,920억 달러 규모로 제시한다. 앞으로 5년간 야생돼지 멸종을 막기 위한 투자는 이보다 수 자릿수 작은 규모일 가능성이 높다는 비교도 내놓았다. 그러나 핵심 논리는 비용편익을 넘어선다. 산업 손실은 회복할 수 있지만 멸종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ASF가 아시아에 던진 질문은 이제 ‘돼지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서 ‘ASF가 들어온 숲에서 종 하나가 사라지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로 확장되고 있다.

방역과 보전을 따로 볼 수 없는 시대

이번 연구는 ASF를 가축질병, 야생동물 보전, 식량안보, 지역사회 생계가 맞물린 복합위기로 본다. 농업·수의방역·야생동물 보전·지역사회·정부정책을 연결하는 One Health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WCS와 연구 파트너들은 로드맵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Innovation Challenge를 준비하고 있으며, 2026년 10월 아르메니아 예레반에서 열리는 CBD COP17에서도 이 문제를 제기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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