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맛있는 돼지고기는 타고날까, 만들어질까?

돼지고기 맛도 설계하는 시대, 한돈의 미래를 바꾸는 식육과학

등지방은 줄이고 마블링은 살리고…좋은 씨돼지 선택부터 사육, AI 분석까지 과학으로 완성

편집부2026.10.24조회 10,922
최현수

전문가 기고

최현수과장(농학박사)

㈜선진 선진기술연구소 Meat&Food혁신센터

01

돼지고기 경쟁력, 이제는 '얼마나 많이'가 아니라 '맛'으로

같은 돼지고기라도 어떤 고기는 고소한 풍미와 풍부한 육즙을 자랑하지만, 어떤 고기는퍽퍽하고 식감이 떨어진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굽는 방법이나 숙성 기술 때문만이 아니다. 고기 자체의 품질은 돼지가 태어나고 자라는 모든 과정에서부터 이미 결정된다.

그동안 국내 양돈산업은 ‘어미돼지가 새끼를 얼마나 많이 낳는지’, ‘사료를 적게 먹고도살이 빨리 붙는지’ 등 돼지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많이 길러내는가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이제는 생산성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수입 돼지고기의 품질이 갈수록좋아지고 있으며, 소비자의 선택 기준도 단순히 ‘국내산’을 찾던 것에서 가격, 맛, 신선도등을 꼼꼼히 따지는 방향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소비자 행동 전문가인 덴마크 오르후스대학교의 클라우스 그루너트 교수는 식품 선택에있어 ‘소비자가 실제로 먹어보고 느낀 만족감과 신뢰’를 강조한다.

아래 그림 1을 보면 소비자가 고기의 품질을 인식하고 구매를 결정하는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소비자가 고기에 대한 '정보'를 접하면 크게 두 가지 반응을 거쳐 구매를결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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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소비자는 머릿속의 기대(인지적 반응)와 마음속의 감정(정서적 반응)을 모두 종합하여 최종적으로 고기를 살지 말지 결정하는 '구매 의사'를 갖게 된다.

결국 우리 돼지 ‘한돈’의 경쟁력은 소비자가 기대했던 맛을 변함없이 일정하게 충족시켜주어 기분 좋은 만족감을 주는 데 있으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과학적으로 고기를 연구하는 ‘식육과학(Meat Scienc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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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등지방은 얇게, 마블링은 풍부하게… 달라지는 씨돼지(종돈) 선택

맛있는 돼지고기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지방이다. 특히 살코기 속에 눈꽃처럼 가늘게 퍼져 있는 근내지방(마블링)은 고소한 맛과 부드러운 식감을 만들어낸다.

과거에는 겉에 지방이 두껍게 낀 돼지일수록 고기 속 마블링도 많을 것이라 생각하기 쉬웠다. 하지만 최근 품종 개량 기술은 겉에 쌓이는 등지방과 고기 속 마블링을 따로 구분해서 관리할 만큼 발전했다. 돼지의 유전자를 분석해 겉기름(등지방)은 너무 두껍지 않으면서도 살코기 속 마블링은 잘 만들어지는 돼지를 골라내는 것이다(그림 2).

이는 돼지를 개량하는 목표가 단순히 빨리 키우는 것을 넘어, 소비자가 먹을 고기의 맛과 품질까지 미리 계획하는 방향으로 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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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좋은 돼지를 골랐다면, 다음은 맞춤형 밥상과 환경이다

아무리 타고난 유전자가 좋은 돼지라도 무엇을 먹고 어떻게 자라느냐에 따라 고기 맛은달라진다. 씨돼지를 고르는 것이 맛의 ‘밑그림’을 그리는 일이라면, 사료를 주고 키우는과정은 그 밑그림에 색을 칠해 실제 고기 품질로 ‘완성’하는 단계다.

돼지는 자라는 시기에 따라 필요한 영양소와 에너지가 다르다. 마블링 역시 사료를 무조건 많이 먹인다고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돼지의 특성과 크는 단계에 맞춰 사료의 영양분과 먹이는 양을 섬세하게 조절해야만 불필요한 겉기름은 줄이고 소비자가 좋아하는 맛있는 고기를 얻을 수 있다. 즉, 어떤 돼지를 선택하고 어떻게 먹여 키울 것인지가 하나로연결되어야만 제대로 된 품질 관리가 가능하다(그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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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출하 전 스트레스를 줄여야 노릇노릇한 돼지고기를 먹을수 있다

고기를 씹었을 때의 촉촉함과 쫄깃한 식감도 무척 중요하다. 이는 고기가 수분을 꽉 잡고 있는 능력(보수력)과 신선도에 영향을 받는다.

이 촉촉함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출하 전 ‘스트레스 관리’다. 농장에서 도축장으로 이동할 때 돼지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고기의 신선도(pH)가 급격히 떨어져고기 색이 하얗게 변하고 핏물과 육즙이 쉽게 빠져나가는 이른바 ‘물퇘지(PSE육)’ 현상이발생할 수 있다. 애써 잘 키운 고기의 육즙과 식감을 식탁까지 그대로 전달하려면 마지막 운송 과정에서 돼지를 편안하게 관리하는 것이 필수다.

아래 그림 4를 보면 고기의 산도(pH)에 따라 고기를 구울 때 프라이팬에 나타나는 차이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등심의 pH가 5.56으로 떨어진 고기 (왼쪽 프라이팬) : 스트레스를 받아 육즙을가두는 능력이 떨어진 상태다. 고기를 구울 때 빠져나온 수분과 단백질이 열을받아 불판에 눌어붙으면서 붉은색 동그라미로 표시된 것처럼 까맣게 타버린 찌꺼기(탄화물)가 많이 발생하게 된다.

등심의 pH가 5.78로 유지된 고기 (오른쪽 프라이팬) : 스트레스 관리가 잘 되어고기가 수분을 꽉 잡고 있는 상태다. 육즙이 쉽게 빠져나가지 않아 고기가 타지않고, 붉은색 동그라미를 보아도 프라이팬에 까만 찌꺼기가 남지 않고 깨끗하게노릇노릇 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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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AI가 마블링을 측정한다… 데이터로 증명하는 고기 품질

좋은 고기를 생산했다면, 그 다음은 품질을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일이다. 그동안 고기의마블링이나 색깔은 전문가가 눈으로 보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분석 기술이 도입되고 있다(그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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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수많은 돼지고기 단면 사진을 학습해 살코기와 지방의 비율, 마블링이 퍼진 정도를정확한 숫자로 분석해 낸다. 이렇게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떤 유전자를 가진 돼지에게 어떤 사료를 먹였을 때 가장 맛있는 고기가 나오는지’를 정확히 찾아낼 수 있다. 경험이나 감에만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과학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품질을 관리하고예측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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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돈의 미래, '잘 키운 돼지'를 넘어 '맛있게 설계한 돼지고기'로

수입 돼지고기는 가격은 물론 냉장·숙성 기술까지 발전시키며 우리 밥상을 위협하고 있다. 한돈 역시 그저 국내산이라는 이름표만으로는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어렵다.

좋은 유전자를 가진 씨돼지를 고르고, 맞춤형 사료를 먹이며, 스트레스 없는 환경에서 키워 육질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생산된 고기는 AI와 데이터로 평가해 그 결과를 다시 농장에 반영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농가의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정육점과 소비자가 늘 믿고 찾을 수 있는 맛있는 고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 이것이 식육과학이 그려가는 한돈의 내일이다. 고기 맛은 더 이상운에 맡겨지는 것이 아니다. 과학과 데이터로 우리가 원하는 완벽한 맛을 설계하고 만들어내는 기술력에 한돈의 미래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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